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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개척시대] ‘라이프 로깅’ 데이터와 인공지능

내 삶의 자취는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추억을 모아두는 상자를 가진 이들도 있을 게다. 소중한 편지와 사진들, 각종 계약 서류나 졸업장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대다수 이들에게 스마트폰이 ‘추억 상자’ 역할을 대신한다. 우리 인생의 매 순간이 스마트폰에 저장된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 기곗값이 문제가 아니다. 거기 저장된 추억을 잃게 될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제 스마트폰은 우리 삶을 기록하는 장치가 되었다.   이처럼 인생 기록을 남기는 행위를 ‘라이프 로깅(life-logg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삶에 대한 기록이 쌓이면 유용하게 활용할 가능성이 열린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힘을 더할 수 있다. 라이프 로깅 데이터를 AI에 제공하면 AI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 수 있다. 그 결과 개개인을 잘 이해하는 맞춤형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최근 애플은 ‘애플 인텔리전스’라는 새로운 AI 계획을 발표했다. 애플의 발표에는 향후 개인용 AI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미래가 담겨있다. 애플 전략의 핵심은 AI가 아이폰에 저장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아이폰에 저장된 메시지, 이메일, 연락처, 일정, 위치 정보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개인 데이터에 기반하여 개인 맞춤형 답변을 생성한다. 앞으로 AI가 직접 이메일이나 메시지를 확인하여 일정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그에 맞추어 필요한 작업을 수행할 수도 있다. 아직은 작문 보조나 이미지 생성 등 일부 작업에 제한되어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활용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제껏 스마트폰으로 AI 비서를 구현하려는 시도는 적지 않았다. 아직 대부분 썩 훌륭하지는 못했다. 이용자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이제 AI 기술이 훌쩍 발전하면서 진정으로 유용한 조력자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만큼 우리 삶을 기록한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AI가 라이프 로깅 데이터를 활용하는 전략이 더 활발히 적용될 곳은 사무실 업무 환경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AI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MS는 지난달 윈도우 운영체제 내에 ‘리콜(Recall)’ 기능을 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리콜이란 기억을 되살린다는 뜻이다. 이용자가 리콜 기능을 켜면 윈도우 운영체제가 수 초마다 화면을 찍어 이용자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자동으로 저장한다. 이용자가 사용한 앱, 방문한 웹사이트, 읽은 이메일, 작성한 문서 등을 모두 기록할 수 있다. 누군가 화면 뒤에 서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기억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컴퓨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이 저장되면 AI가 이 정보를 처리한다. 필요한 자료를 검색해서 알려줄 뿐만 아니라 AI가 이를 바탕으로 여러 도움을 제공한다. 그러면 AI에 작업을 지시할 때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없어진다. AI는 이미 과거 우리의 경험과 행동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AI에 무엇이 필요한지 요청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함의 대가로 지속적인 감시 환경에서 일해야 하고, 끊임없는 보안 공격 위협에 시달리는 암울한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이때 필수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정보 보안이다. 더 많은 정보가 누적될수록 값어치가 올라간다. 그러면 더 많은 해커가 호시탐탐 이 정보를 노릴 것이 분명하다. 해커가 침입하더라도 함부로 데이터를 볼 수 없도록 막는 조치가 필수적이다.   보안 장치가 충분치 못하면 서비스를 도입하기 어렵다. 예컨대 윈도우 리콜 기능을 발표하자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보안 문제점을 지적했다. 해킹 시도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MS는 보안 점검을 위해 출시를 늦추기로 했다.   앞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우리의 라이프 로깅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AI와 접목하려는 시도가 많이 늘어날 것이다. 애플 인텔리전스나 윈도우 리콜 기능은 이러한 방향을 잘 보여준다. 이때 이용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데이터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이용자가 언제 어떻게 자기 행동이 기록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생활로 보호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잘 구분되어 있어야 각자 그에 맞추어 적절히 행동할 수 있다. 무분별한 감시가 아니라 우리 삶에 도움 되는 정보를 축적해서 AI에 알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이렇게 저장된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미리 정해 둔 목적대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만큼이나 우리에게는 더 많은 숙제가 주어졌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데이터 라이프 로깅 개인 데이터 윈도우 운영체제

2024-07-07

[인공지능 개척시대] 집집마다 인공지능

우리 집에는 인공지능이 몇 개나 있을까.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인공지능 스피커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이젠 잘 쓰지 않게 되었다. 얼마 전 장만한 로봇 청소기도 있다. 그러나 청소하다 장애물에 걸려 멈춰 선 모습을 보면 과연 인공지능이 들어 있는지 의문스럽다.   찬찬히 더 살펴보니 몇몇 가전제품에 ‘인공지능’이라 적혀 있다. 하지만 매번 쓰는 버튼만 누를 뿐 그럴듯한 인공지능 기능은 써 본 적이 없다.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우리 생활 속으로 깊숙이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진짜’ 인공지능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현재 대규모 인공지능은 대부분 거대 IT 기업이 구축한 데이터센터에서 구동되고 있다. 강력한 성능을 가진 연산장치들이 빽빽이 들어찬 곳이다. 언론 기사로 접하는 놀라운 성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실행하려면 여전히 값비싼 장치가 여럿 필요하다. 일반 회사나 가정에 설치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강력한 인공지능을 쓰려면 인터넷에 접속해야 한다. 내 요청을 인터넷으로 전달하면, 데이터센터의 인공지능이 계산한 다음 다시 인터넷을 거쳐 답변이 돌아온다. 물론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다면 손쉽게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다. 딱히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게다가 데이터센터 내 인공지능 성능이 개선되면 별다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곧바로 나아진 성능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에는 근본적인 난점이 있다. 이용자의 정보를 인공지능 운영 회사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라면 기밀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생긴다. 챗GPT와 같은 외부 인공지능 서비스의 사용을 금지한 회사도 적지 않다.   가정에서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 위험이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편하게 하려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언제 집에 돌아와 무엇을 하는지, 집에 누가 언제 방문했는지 등에 관한 정보 등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한들 이 모든 사생활 정보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인공지능에 선뜻 전달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몇 해 전 국내 아파트에 설치된 실내 카메라 장치가 해킹되어 촬영 영상이 유출된 사례가 있었다. 누군가 우리 집 실내를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니 소름 끼치는 일이다. 인공지능에 카메라가 달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감이 들 수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려면 인공지능이 우리 정보를 잘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용자 정보 보호는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 처리에 필요한 이용자 정보를 인터넷으로 전달하지 않고, 회사나 가정 내부에서만 처리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회사에서는 자체 전산실에 인공지능을 설치·활용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을 ‘온프레미스(on-premise)’라고 한다.   가정용 인공지능에도 마찬가지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집안이나 제품 자체에 독립된 인공지능을 두어 인공지능이 수집한 사생활 정보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다. 민감한 정보는 따로 저장해 두지도 않아야 한다.   이런 방식은 비용과 성능 문제가 따른다. 아직 고성능 인공지능을 실행하는 연산 장치는 매우 비싸고, 상당한 전력을 소비한다. 회사나 가정에 자체 인공지능을 구축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값싼 장치에서도 잘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경량화 기술이 필요하다.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 음성비서가 좋은 예다. 종전에는 음성을 인식하려면 그 신호를 인터넷으로 전송해서 인공지능이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인공지능 전용칩을 이용하여 곧바로 음성을 인식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좋은 소식도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훨씬 더 작게 만들더라도 회사나 가정에서 꼭 필요한 몇몇 작업은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인공지능 개발 경쟁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껏 누가 더 크고 더 강력한 인공지능을 만드는지를 두고 경쟁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 누가 더 저렴하고 전력을 덜 소모하면서도, 꼭 필요한 작업에서는 괜찮은 성능을 낼 수 있을지를 두고 경쟁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발전이 이루어져야 인공지능이 진정으로 일상에 널리 보급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집안일을 돕는 인공지능 로봇이 카메라로 집 내부를 관찰하더라도 불안하지 않고, 인공지능이 주어진 작업을 솜씨 좋게 해내는 날을 상상해본다. 이러한 변화는 인공지능이 이용자 정보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영업비밀 인공지능 성능 인공지능 스피커 가정용 인공지능

2023-10-01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에 공정성 점수를 매긴다면

나는 공정한 사람인가? 아마도 누구나 자신이 공정하다고 여길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바꿔보자. 내가 얼마나 공정한지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답하기 어렵다. 당장 공정성을 점수로 매길 수 있는 것인지부터 의문이 든다. 공정성에 점수를 매기기 어려운 까닭은 아마도 사람마다 공정성을 정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은 행동을 두고도 사람마다 평가가 갈린다. 그런데도 한 가지 척도를 들이대 누가 얼마나 공정한지 수치화하기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면 인공지능은 어떠한가. 어떤 인공지능이 공정한지 판단할 수 있을까. 그 인공지능이 얼마나 공정한지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현학적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실무상으로도 무척 중요한 문제다. 예컨대 금융기관이 신용도를 평가하는 인공지능을 도입하려면 그 인공지능이 공정한지 평가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인공지능의 공정성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수치화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공정성과 같이 모호한 개념에 점수를 매기는 일은 만만치 않다.   비록 어떤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주관적이라서 측정하기 어렵더라도 비슷하게라도 추정해야 하는 경우는 많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재기 어렵지만,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는 여러 기준을 이용해 점수를 매긴다. 국내의 한 경제학자는 기회 불평등의 척도를 재기 위해 ‘개천용’ 지수를 만들기도 했다. 이 지수는 우리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측정한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이 얼마나 공정한지 측정하는 지표를 열심히 개발해 왔고, 이미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방법은 인공지능의 정확성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예컨대 회사 출입구에 얼굴인식 인공지능이 설치되어 출입을 관리한다고 생각해 보자. 직원이 안경을 꼈는지, 아니면 머리카락이 얼마나 긴지에 따라 정확도에 차이가 있다면 이는 불공정한 것이다. 정확도가 낮은 직원들은 더 자주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공지능이 여러 집단에 대해 정확도 차이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해 공정성 점수를 매길 수 있다.   하지만 딱히 정답이 없는 경우에는 그러한 방법을 쓰기 어렵다. 챗봇 같은 대화 인공지능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여러 인간 평가자들을 뽑아 인공지능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점수를 매기도록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들고, 객관화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대화 인공지능의 공정성은 평가하기 쉽지 않다.   사실 인공지능에 공정성 점수를 매기는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 세상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학습 데이터로부터 배운다. 그런데 그 학습 데이터에는 이미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부정의한 세상이 반영되어 있다. 불공정한 학습 데이터로 배운 인공지능이 공정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그래서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정하지 못하더라도 인공지능에는 마치 세상이 아름다운 것처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인공지능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인공지능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 그대로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 세계와는 다른 내용을 학습시키면 오히려 인공지능의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가 편향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편향을 고치기 위해 인공지능의 정확성을 크게 훼손해서도 안 된다. 그 중간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인공지능에 공정성을 가르치는 문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흔히 겪는 고민과 비슷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인공지능이라는 갓 태어난 아이를 다 함께 키우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엄격한 공정성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 줄 필요도 있다. 인공지능이 공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애써야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태도도 함께 필요하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공정성 공정성 점수 인공지능 학습 대화 인공지능

2022-10-10

[인공지능 개척시대] ‘왜?’ 물음에 답하는 인공지능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었다. 신이 묻는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이렇게 답한다.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습니다.” 모두 잘 아는 이야기다. 흔히들 유혹에 넘어가는 인간의 나약함이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비겁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명한 인공지능 연구자 주디아 펄은 달리 해석한다. 이 이야기가 인간지능의 본질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지능의 핵심은 바로 ‘왜?’라는 물음에 답하는 능력이다. 창세기 속 인간은 신에게 왜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즉,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어떤 일의 원인을 찾아내고 전달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인공지능도 이런 능력을 갖추게 할 수 있을까. 많은 연구자는 현재의 인공지능으로는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실 어떤 사건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데, 아직 인공지능에는 그런 능력이 충분치 못하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가 뱀에게 속았기 때문이라는 답에는 한 가지 전제가 숨어 있다. 만약 뱀이 자신을 속지 않았더라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만약 어차피 자신들의 호기심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을 것이라면, 뱀에 속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뱀이 그들을 속이지 않았던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비슷한 지적 활동을 일상적으로 손쉽게 수행한다. “제품 디자인을 바꾸었기 때문에 매출이 증가했다”라고 분석했다고 해보자. 이 말은 제품 디자인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매출이 그대로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는 반대되는 가정적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이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와 같은 지적 능력이 인류의 역사, 나아가 지구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한다. 수만 년 전 인류에게는 ‘인지혁명’이라는 독특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결과 우리의 조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됐다. 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고, 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지 등과 같은 과학적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물음에 답하면서 현대 문명이 생겨났다.   인공지능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인공지능이 진정으로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하려면,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른바 ‘딥러닝’ 인공지능에는 그러한 능력이 부족하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왜 그렇게 수를 두었는지란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그렇게 수를 두면 승률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뿐이다. 인공지능 챗봇은 인간과 대화할 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마치 인간처럼 대화하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일 뿐이다.   최근 점점 더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대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요슈아 벤조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인공지능이 ‘인과율’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 즉, 미래의 인공지능은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인공지능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 가정적 상황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추진할 야심 찬 기획이다.   인과율을 이해하는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일은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꼭 필요하다. 자율주행차에 안심하고 운전을 맡기려면 왜 그렇게 방향을 바꿨는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사람을 채용하려면 인공지능이 왜 지원자를 그렇게 평가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만약 인공지능이 인과율을 이해할 수 있고 우리가 인공지능의 예측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공지능을 인류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더 깊이 있게 파악하고 여러 정책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중보건학·사회학·경제학·경영학 등 그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왜?’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필요한 이유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물음 인공지능 연구자들 인공지능 이야기 지적 능력

2022-09-05

[인공지능 개척시대] 호주머니 속 인공지능

매년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된다. 하지만 혁신적 변화를 찾기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대부분 기술이 도입 초기에는 급격한 혁신이 이루어지다 점차 그 발전 속도가 더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최근 스마트폰에는 이제 막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혁신적 기술이 숨어 있다. 바로 ‘인공신경망 전용 처리장치’다. 최근의 스마트폰에는 인공지능 계산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칩이 포함돼 있다. 얼굴 인식을 통해 스마트폰을 잠금 해제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 화질을 개선하거나, 인공지능 비서가 음성을 인식하거나, 통화할 때 배경 소음을 제거하는 등 다양한 작업에 활발히 활용된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기술은 아직 ‘있으면 좋은(Nice-To-Have)’ 기능에 가깝다. 주로 사진·영상·음성 처리를 개선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기술이 초창기에는 ‘있으면 좋은’ 것에서 시작해서 점차 ‘꼭 필요한(Must-Have)’ 것으로 발전한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을 때 스마트폰은 그저 ‘있으면 좋은’ 제품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 되었다. 그러면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도 ‘꼭 필요한’ 기능이 될 수 있을까.   최근의 인공지능 발전 속도나 응용 분야가 확대되는 경향을 생각해 보면, 인공지능이 스마트폰에서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메타버스에서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속 세상은 새롭게 창조된 상상의 공간일 수도 있고,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쌍둥이 공간일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 메타버스 속에서는 인공지능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메타버스 속 이용자 경험을 원활하고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필수 요소로 작동한다.   그러면 막강한 성능을 가진 대규모 서버 컴퓨터에서 계산을 처리해서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주면 되지 않을까. 굳이 스마트폰에서 복잡한 인공지능 계산을 직접 수행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최첨단 초고성능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규모로 인공신경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러면 스마트폰들이 계속해서 대규모 서버 컴퓨터에 접속해서 처리된 결과를 내려받아야 한다. 이런 처리 방식은 오히려 성능상의 병목을 가져온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인공지능 계산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처리 방식을 ‘엣지(edge) 컴퓨팅’이라고도 부른다. 엣지 컴퓨팅이 점차 확산되고 발전하면 스마트폰 속의 인공지능 처리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흔히 인공지능이라 하면 고성능 대규모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미래의 인공지능은 우리의 호주머니 속에서 주로 실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한 것과 비슷하다. 개인용 컴퓨터의 도입 초기에는 확산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전망과 달리 이제 개인용 컴퓨터는 집집마다 ‘꼭 필요한’ 제품이 되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처리장치도 ‘있으면 좋은’ 기능에서 ‘꼭 필요한’ 기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아직은 기술적 제약이 많다. 인공지능 성능 개선뿐만 아니라 경량화·저전력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래에는 소비자들이 인공지능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기준으로 스마트폰을 고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스마트폰을 ‘AI폰’이라 부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 개척시대 호주머니 인공지능 인공지능 기술 인공지능 발전 인공지능 계산

2022-06-23

[인공지능 개척시대] 국가안보와 인공지능 실력

 온 국민이 지구 건너편 전장(戰場)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따져 묻는 것과는 별개로, 무수한 생명이 희생되는 장면에 가슴 아프다. 30여 년 전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인류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일만 남았다는 기대로 가득 찼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기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처럼 변화한 안보 환경에 대비하여, 우리는 어떻게 국방력을 향상시키고 국민의 안전을 지킬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한국의 미래 안보 역량은 우리가 얼마나 우수한 인공지능 실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따라 좌우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제 단순히 군인 수와 같은 양적 우위만으로 섣불리 국방력을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다. 얼마나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무기를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운용·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렇듯 첨단화된 국방체계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전장의 정보를 다층적으로 수집하여,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인공지능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가져올 시간상 이점은 미래전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전장에서는 순간의 판단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 적군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1초도 걸리지 않아 즉각적으로 공격 결정을 내린다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그에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안보 및 국방 분야에 있어 인공지능 도입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빠른 행보를 보인다. 미국 국방부는 2018년 “인공지능을 통해 국방부를 변화시키겠다”라는 목표를 세우고 ‘합동 인공지능 센터(Joint AI Center)’를 창설했다. 구글의 전 회장 에릭 슈미트를 위원장으로 하여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를 설치하고 실리콘 밸리의 능력과 경험이 국방 분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2020년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는 7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을 국가 안보에 적용할 것을 주문했다. 국방 분야에 인공지능 분석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관련 연구개발 예산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때 인공지능의 군사적 활용에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18년 구글 직원 3000여 명은 구글이 전쟁 사업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결국 구글은 군사 프로젝트에 대한 입찰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인공지능 기술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큰 위험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살상 로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를 절멸 위기에 빠뜨릴지 모른다는 시나리오는 진지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공지능 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법상으로 자율살상무기 활용을 금지하려는 노력은 2014년부터 이어져 왔지만, 여전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국제적 합의가 도출될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국제협약으로 이를 금지하더라도, 전체주의적 권력이 이를 무시하거나 비밀리에 자율살상무기를 개발하여 활용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군사 목적 인공지능 자체를 금지하기보다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불가피하다.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면 군사 목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한 결과 오히려 인류 복지에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터넷 기술도 그 역사를 따져 보면 냉전 시대 군사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터넷은 핵전쟁이 발발하더라도 통신이 두절되지 않도록 고안된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인공지능을 군사 목적으로 활용하려면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성능과 신뢰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이 가능하게 될 여지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실력이다. 민간에서 개발된 기술을 국방 분야에 도입하고, 국방을 위한 인공지능 기초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는 인력과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당면한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중장기적 과제에 가깝다. 적절한 계획을 세우고 차근히 실행해 가야 한다. 충분한 관심과 예산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 개척시대 국가안보 인공지능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 인공지능 기술 인공지능 실력

2022-03-13

[인공지능 개척시대] 우주시대의 인공지능

 누리호의 첫 시험 발사가 이루어졌다.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리나라의 우주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근대 인류의 과학기술 문명은 우주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 17세기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우주를 살펴본 이래, 뉴턴은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고, 현대 문명의 기틀이 된 고전 물리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우주 탐사는 그저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러한 전지구적 노력에 동참할 수 있는 반열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앞선다.   자연스레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우주 탐사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우주는 인간의 활동이 제약되는 공간이다. 그러니 인공지능 활용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에서는 우주 탐사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을 묘사해 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HAL 9000’ 인공지능이 우주선을 통제한다. 2018년 미국의 민간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는 AI 로봇 “사이먼(CIMON)’을 쏘아 올렸다. 사이먼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사의 임무 수행을 보조한다. 50년 만에 영화 속 인공지능이 현실화된 셈이다.   자율형 로봇은 우주 탐사에서 여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중 하나는 우주 잔해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다. 현재 지구 궤도에는 매우 많은 파편이 흩어져 있다. 야구공 크기 이상의 파편은 2만여 개가 넘고, 밀리미터 단위의 작은 파편은 1억 개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속도가 시속 수만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빠르다 보니, 작은 파편이라도 우주선과 충돌하면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우주 잔해를 미리 탐지·추적하고, 자동으로 회피하는 기술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능동적으로 우주 잔해를 제거하는 기술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율형 로봇을 이용하여 우주선이나 위성이 궤도를 유지하면서 유지·보수하거나, 우주선 내·외부의 문제를 탐지하여 대응하며, 지구의 유인 관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임무 계획을 수정하는 기능까지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활약이 기대되는 또 다른 분야는 우주 빅데이터 분석이다. 현재 위성은 하루에만 수백 테라바이트(TB) 단위의 영상을 수집한다. 데이터 분석 작업에 인공지능을 활용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지리정보를 분석하고, 다양한 출처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종합하여 처리하여 유용한 정보를 추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주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작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부품의 성능 진단 자료를 분석하는 것과 같이 여러 측정 작업을 개선하여 우주선과 위성의 제작 및 시험 공정을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이 우주 탐사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딥러닝 기술은 고작 10년 남짓 된 새로운 기술이다. 사소한 오차도 허용될 수 없는 우주 환경에서 임무 수행의 확실성과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미국 나사(NASA)는 우주 탐사 분야에 있어 ‘신뢰할 수 있는 자율성(trusted autonomy)’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다. 미래에는 별도의 인간 개입이 없이도 우주선을 구동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수준의 신뢰성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인공지능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인공지능의 신뢰성을 높이는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최근 수년간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내린 판단의 이유와 근거를 설명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여러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 우주 탐사가 아니더라도 고도의 정확도와 안전성을 요구하는 여러 작업에까지 인공지능이 폭넓게 활용될 수 있게 된다. 신뢰가능한 인공지능 확보에 이르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이제 그 시작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인공지능 개척시대 로봇 우주시대 인공지능 기술 인공지능 활용 민간 우주탐사기업

20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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